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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 조선시대 객사였던 과천 온온사 탐방

블록체인 체험기

by Happycoin 2020. 5. 3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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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아침에 조선시대 객사였던 과천 "온온사"를 탐방했습니다. 이곳은 비 오면 비 오는대로 해지면 해지는 대로 해 뜨면 해 뜨는 대로 언제나 멋진 모습을 보여 주는 곳입니다.

 

[아래 사진]은 온온사 전경입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주변 수목 신록은 더욱더 풍성해 보입니다. 그 풍성함으로 자만할 수 있는 신록의 분위기를 온온사가 무게감 있게 중심을 잡아 줍니다.  

수목이 우거진 온온사 전경

이 온온사는 조선시대 객사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곳 주변에는 이곳에 대한 안내문이 있는데요. 전문을 제가 아래와 같이 옮겼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온온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온온사는 조선시대 인조 27년(1649)에 지어진 과천현의 객사이다.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인 전패를 모셔 놓은 곳이다. 백성들은 객사에서 일정한 날짜에 임금이 계신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의식을 치렀다. 객사는 외국에서 온 사신이나 나라의 일을 하는 관리들의 숙소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객사는 고을의 수령이 일을 하는 동현보다 더 지위가 높다. 그래서 고을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위치하며 건물도 정성을 다해 지었다.

온온사는 정조가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머물며 붙여 준 이름으로 "경치가 아름답고 몸이 편안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온온사와 뒤뜰에 있는 수목

또한 이곳은 "과천현 관아지였다."라고 하는 안내문이 있습니다. 이곳에 적힌 안내문 전문을 아래와 같이 옮겼습니다.

과천현 관아지 |果川縣 官衙址
과천현 관아지는 과천현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건물인 관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돌로 만들어진 유물이 발견되고 나무가 나이가 많은 점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온온사를 중심으로 관아가 지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천현의 관아는 조선 초기 무학대사의 제자인 열이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이 없어 정확한 내용은 알수가 없다. 다만 임금이 묘소(능), 온천, 사냥을 오고 가면서 이용하던 행궁의 기능과 지방 관청의 기능을 모두 처리했기 때문에 다른 곳의 관아보다 규모가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천현 신수읍지(숙종25, 1699년 작성)에 과천현 관아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온온사와 수목

또한 이곳에는 수령이 600년 이상된 은행나무가 온온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가을철 단풍이 한 폭의 그림처럼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600년된 은행나무

온온사 객사와 은행나무 사이에 경사가 있는데요. 이 근방에는 [아래사진]과 같이 찔레꽃이 활짝 피어 있더군요. 소박하면서 은은한 향기와 함께 흰색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 그리고 온온사와 아주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소박한 찔레꽃

아침 출근길에 이곳을 자주 지나고 있는데요. 언제 찾아도 항상 웃으면 반겨 주는 이 온온사는 참 정겨운 곳입니다. 관악산을 남자하동 방향으로 오르시거나 내려오시는 분들은 시간 되면 한 번쯤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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